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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부터 지속되는 가뭄으로 애써 키운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합니다. 댐과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그 상황은 심각한데요. 최근 비가 간간히 내리긴 했지만, 가뭄 해갈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뭄은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 다른 자연재해와는 달리 발생시점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처하기 어려워 농민들은 더욱 막막하기만 할 뿐입니다.



   가뭄으로 전국이 메마르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전국에서 인천, 경기, 강원, 충북, 경북 등 5개 시·도에서 가뭄이 가장 심각하다고 합니다. 해당 지역에 닥친 피해면적을 합하면 무려 73.58나 되는데요.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2.9)과 비교하면 25.3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특히 강원도 영동은 평년대비 누적 강수량이 36%로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수 현황

 (출처 : 기상청, 2015.01.01 ~ 2015.06.22 누적강수량)



예년보다 늦어지는 장마로 가뭄이 지속된다면 밭작물은 물론 벼농사에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일부 지역에선 모내기를 하지 못한 곳도 있으며, 모내기를 하더라도 강한 햇빛으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수분 증발량은 더욱 늘어날 뿐인데요. 또한 축산 농가에서는 가축 폐사, 양식장에서는 적조·녹조 등이 발생하여 그 피해는 일부 농가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농어촌 공사의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2일을 기준으로 인천 강화의 저수율은 5%(평년 55.4%), 경기 지역 저수율도 32%(평년 53%)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뭄은 단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데요. 북한에서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 일각에선 식량난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곡창지대인 개성과 사리원을 포함한 황해도 지역이 가뭄에 매우 시달리고 있으며, 황해도 지역의 강수량은 평년의 40% 정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단비가 절실한 상황




농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단비와 같은 장마가 시작되는 듯 기대했지만, 지난 주말 장마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다시금 무더위가 이어졌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비가 적게 내리는 이른바 '마른 장마'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요. 올 여름 장마가 늦게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로 엘니뇨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엘니뇨는 하와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북태평양 고기압을 약하게 하고, 장마 전선을 한반도로 밀어 올려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엘니뇨가 발달하는 해에는 장마 전선의 힘이 유난히 약해지기 때문에 장마 기간이 짧게 나타나며, 비도 그만큼 적게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 여름 북반구에 엘니뇨가 지속될 확률을 90% 관측한 바 있습니다.


엘니뇨가 발생하지 않았던 해에는 중부 지방의 강수량은 381mm였지만, 엘니뇨가 발생했던 해에는 평균 307mm의 장마비가 내려 평년보다 800mm 적은 비가 내렸습니다. 특히, 1991년과 2002년에는 예년 강수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마른장마 현상이 나타났고, 1982년에는 역대 가장 늦게 시작한 장마로 기록됐습니다.



장마 시작일, 종료일, 기간(1961-2014)

(출처 : 기상청, 1961 ~ 2014 장마 시작일·종료일 기간)



   수원 확보를 위해 물 절약 실천을


가뭄 확산에 따른 물 부족 문제가 국가적인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어 생활 속 물 절약 습관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요. 집에서 사용하는 물 사용량만 줄여도 커다란 수원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부터'라는 작은 실천이 이뤄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힘이 모여 가뭄을 극복 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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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극심한 가뭄이 해갈되어

우리 농민들의 고통이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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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난지 6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특히 6월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로 그 어느 때보다 나라 사랑의 마음과 조국 수호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데요.

 

하지만, 전국 고교생 5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349)가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답했다고 하는데요. 6·25전쟁의 발발 형태를 남침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북침(北侵)과 남침(南侵)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헷갈리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25전쟁





6·25전쟁은 1950 6 25일 새벽에 북위 38도선 전역에서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하여 1953 7 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만 3 1개월 2일간 계속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기간 동안 양측은 38도선을 각각 3회씩 넘나들고,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오르내리며 전 국토의 약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국토는 피폐해지고 전쟁 이후 더욱 극심한 문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은 침략전쟁이자 이념전쟁의 성격을 내포했는데요. 북한정권이 남·북한 내부의 민족갈등 속에서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으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한국정부를 타도하고 통일된 공산주의국가 수립을 목표로 개시된 전쟁입니다.

 

6·25전쟁 중에 진행되었던 휴전회담은 전쟁이 발발된 지 3 1개월, 회담이 개시된 지 24개월 17일 만에 유엔군의 미국 대표, 북한군, 중공군 대표가 휴전협정을 서명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6·25전쟁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종전이 아니라 휴전인 상태로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피해로 아직도 고통 받는 사람 많아




6·25전쟁은 우리민족이 치른 전란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쟁입니다. 군사작전으로 인한 1차적 전쟁피해와 이념투쟁에 의한 2차적 피해가 중첩되었으며, 최신 무기가 동원됨으로써 살상력을 더하였습니다.

 

인명피해에 있어 한국군(경찰 포함) 63만 명, 유엔군 15만 명을 포함 총 78만 명이 전사·전상·실종 되었으며, 북한군 80만 명, 중공군 123만 명 등 약 203만 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군인 피해만도 총 281만 명에 달했습니다. 또한 1952 3 15일까지 발생된 전재민의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섰으며, 휴전 때까지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났겠지만 결과적으로 전체인구의 1/2 이상이 전화를 입었습니다.

 

당시 피해를 입지 않은 국민은 없었으며, ·사상자의 혈육과 이산가족 등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6.25전쟁의 연장선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의 참혹했던 피해 현황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알아봅시다!> 6.25전쟁사(3권), 2005, p.144.




출처 : 국방군사연구소, , <한국전쟁피해통계집>, 1996, p.144.



출처 : (가) 국방부, <한국전란 1년지>, 1951, p.D35

       (나) 국방부, <한국전란 1년지>, 1951, p.D37

      (다) 국방부, <한국전란 3년지>, 1954, p.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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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은 전쟁이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닌 잠시 쉬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는 6.25전쟁 같은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고,

한반도에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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