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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서는 저출산 주요정책 수립 등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금년에 처음 신혼부부통계를 발표했습니다최근 5년 이내 혼인한 신혼부부(사실혼 관계 제외)를 대상으로 했으며정부 부처 및 공공기관에서 수집 ‧ 보유하고 있는 행정자료와 각종 데이터베이스를 상호 연계(인구동향일자리행정통계주택소유통계DB )하여 작성됐습니다


신혼부부 절반 이상 수도권 거주, 남녀 모두 30대 초반이 가장 많아  

많은 분들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저마다 새해 계획을 세웠을텐데요, 그 중 하나로 결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저출산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도 대두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인데요, 통계청에서 금년에 처음으로 신혼부부통계’(16.12.26일 발표)를 작성하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통계는 2015 11 1일을 기준으로 혼인신고 후 5년이 경과하지 않은  부부를 대상(사실혼 관계 제외)으로 했고, 신혼부부 기본현황은 물론 출산 및 보육, 경제활동, 주거현황 등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우선, 지난 5년간(‘15.11.1 기준) 혼인신고한 부부 159 6천 쌍 중 국내에 거주하며 혼인상태를 유지 중인 신혼부부는 147 2천 쌍 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중 부부 모두 초혼인 경우가 80.1% 117 9천 쌍, 둘 중 한 명 이상 재혼인 경우가 19.9% 29 2천 쌍였습니다.

[출처 : 통계청 '2015년 신혼부부통계']

그렇다면, 신혼부부는 주로 어느 지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있었을까요?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경기도로 전체의 26.4% 38 8천 쌍으로 나타났고, 이어서 서울이 29 1 (19.8%), 경남 9 7천쌍(6.6%) 순였습니다. 특히, 시도별로 일반가구의 분포와 신혼부부 가구의 분포를 비교하면, 일반가구 전체의 48.2%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반면, 신혼부부의 수도권 거주 비중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2.3%로 높은 비중을 보였습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한편, 혼인당시 신혼부부의 혼인연령을 보면 남편의 경우는 30대 초반이 40.7%, 아내 20대 후반이 40.2%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혼인연령 구성으로 살펴보면 남편 30대 초반 + 아내 30대 초반’’ 18.8%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남편 30대 초반 + 아내 20대 후반 구성이 18.4%, ‘남편 20대 후반 + 아내 20대 후반구성이 18.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밖에도 초혼 신혼부부 117 9천 쌍 중 부부가 함께 거주하고 있는 비중은 전체의 86.3%를 차지하며, 따로 사는 부부의 53.0%는 동잉 시도 내에서 거처를 달리하는 경우로 조사됐습니다. 

맞벌이 · 무주택 신혼부부 아이 덜 낳아

초혼인 신혼부부 117 9천 쌍 중 ‘15 11 1일 현재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부부는 41 9천 쌍으로 전체의 35.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혼인한 1~2년차를 제외한 혼인 3~5년차인 부부 71 5천 쌍 중에서는 19.3%(13 8천 쌍)가 자녀를 출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 경제활동별로 살펴보면 맞벌이 부부 중에서 자녀가 있는 비중은 57.9%로 외벌이 부부(70.1%)보다 더 낮으며, 평균 출생아 수는 0.72명으로 외벌이 부부(0.90)에 비해 낮습니다. 또한, 택소유 여부별로 보면 현재 무주택 부부 중 자녀를 출산한 부부 비중은 61.5%로 주택을 소유한 부부(68.4%)보다 낮고, 평균 출생아 수도 0.77명으로 유주택 부부(0.88)에 비해 낮죠. 


[출처:2015년 '신혼부부통계']

초혼 신혼부부의 경우 맞벌이 부부는 전체의 42.9%에 해당하는 50 6천 쌍으로, 최근 혼인한 연차 일수록 맞벌이 비중이 높았습니다.  (혼인 5년 차) 39.7%  (혼인 3년 차) 40.6%  (혼인 1년 차) 50.0%
  
한편, 신혼부부의 주거 유형은 아파트가 64.7%로 가장 많았고, 이이서 단독주택 18.5%, 다세대주택 10.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신혼부부에게 주택마련은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초혼 신혼부부 117 9천 쌍 중 무주택 신혼부부 57.4%(67 6천 쌍) 수준입니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으로 인해 이제 생산가능인구가 크게 감소하며 인구절벽이 현실화 될 것이이라고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출산 문제가 사회 곳곳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새해 소망으로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꿈꾸는 사회,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사회 우리 사회가 그런 희망의 사회로 점차 변화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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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2017.01.11 12:04 신고 ADDR EDIT/DEL REPLY

    난 저출산이어서 좋은데. 고령화 되던 말던 내 알바 아니고 인구나 더 확실히 줄었으면...좁은 땅덩어리에 3천만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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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대 값이 아파트 한 채 값이라면? 초등학생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 무슨 소리냐 싶지만 불과 30년 전엔 그러했다.

1955년 전화가입자는 3만 9,000명으로 인구 1,000명당 2대꼴이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통신사업 5개년 계획이 착수되자 전화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화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전화를 사고팔거나 전·월세를 놓아주는 ‘전화상’이 서울에만 600여 곳이나 성업했다.

전화를 둘러싼 부조리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전기통신법을 개정해 1970년 8월 31일까지 가입된 전화(가입자수 45만 7,280명)는 매매할 수 있도록 하되, 그 후 새로 가입된 전화는 금지했다. 전자를 백색전화, 후자를 청색전화라고 불렀는데 당장 전화가 필요한 사람은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백색전화를 살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전화 값은 더 뛰어서 백색전화 한 대가 260만원까지 치솟았다. 서울시내 50평짜리 집값이 230만원 안팎이었던 걸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한 가격이었다. 전화는 당당히 ‘재산목록 1호’일만 했다.

전화 값 거품은 1978년 전자식 교환기를 들여오면서 비로소 꺼지기 시작했다. 1986년 한국이 세계에서 10번째로 디지털식 전자교환기(TDX)를 독자기술로 개발하면서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서민의 통신수단으로 거듭난 것이다.
1988년 가입자 1,000만 명, 1997년 2,000만 명을 넘어 2007년 말 현재 2,313만 명에 이르러 국민 두 명 중 한 명꼴로 보급됐다.

한편, 전화가 귀했던 시절 공중전화야말로 서민의 애용품이었다. 국내 첫 무인 공중전화기는 1966년 6월 1일 시내 중심가 10곳에 처음 설치됐다.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가서야 선보였는데 부스마다 시외전화를 걸기 위해 줄을 선 풍경이 낯익었다. 1982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시내·외 겸용 DDD 공중전화가 나오면서 공중전화도 보편화됐다.

같은 해 한국통신공사(현 KT)에서 떨어져 나온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T)가 무선호출 서비스를 개시했다. 삐삐의 등장은 통신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982년 235명에 불과했던 삐삐 가입자는 10년 만에 6,178배인 145만 2,000명, 1997년에는 1,519만 4,821명까지 불었다. 인구 세 명당 한 명꼴로 삐삐를 찼었다는 얘기다.

업계 1위였던 한국이동통신은 당시 세계 3위 가입자를 자랑했다. ‘8282(빨리빨리)’, ‘1004(천사)’와 같은 숫자의 의미를 모르면 신세대 축에 끼지 못할 정도였다. 삐삐의 대중화는 공중전화의 보급도 가속화시켜 1997년 42만 3,502대까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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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삐삐의 시대는 채 20년을 못 갔다. 무선호출 서비스가 시작된 지 불과 2년 뒤인 1984년 서울 구의동 광장전화국의 구석방에서 직원 32명으로 시작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차량전화 서비스팀이 국내 처음으로 카폰을 상용화했다. 첫 해 가입자는 2,658명에 불과할 정도로 실적이 초라했다. 통화 품질도 떨어졌으며 전화기가 너무 커서 일반국민들의 실생활에 쓰기는 곤란한 상태였다.

그러나 1995년 한국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단말기와 통신료 문제가 한꺼번에 풀렸다. PCS 단말기는 휴대전화에 걸맞을 만큼 작아졌고 통신료도 쌌다. 기존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에 이어 1996년 PCS 사업자 3곳이 새로 시장에 진입했다.

PCS폰의 등장은 1997년을 정점으로 삐삐와 공중전화 시대의 퇴조를 불러왔다. 한때 신세대 젊은이의 필수품이었던 삐삐 가입자는 2008년 1월 말 현재 3만 9,513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공중전화 역시 1997년 이후 줄곧 줄다가 2002년 월드컵 때 다시 44만대 수준으로 늘었으나 그 이후 다시 급감해 2005년 14만대 안팎으로 줄었다.

반면 1996년 318만 989명이었던 휴대전화 가입자는 1년에 두 배씩 늘어나 1998년 1,000만 명, 99년 2,000만 명, 2002년 3,000만 명에 이어 2006년 4,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2008년 1월 말 현재로는 4,374만 5,45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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