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topic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게 부여된 조사구는 다섯 곳이며 총 사업체 수는 250여 개였다. 한 곳은 17층짜리 오피스텔이고, 나머지 네 곳은 4인 이하 개인사업체 밀집 지역이다. 다행히 모든 조사구는 눈 감아도 그 위치가 다 그려졌다. 우선 사업체 명부에서 산업분류와 회사법인, 그중에도 본사·지사가 함께 있는지를 훑어 보았다. 오피스텔은 산업분류도 다양하고 조사표 종류도 제각각이어서 공부를 더해서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나머지 조사구는 같은 산업분류끼리 공통분모를 찾아 일관되게 적용할 지침을 숙지해야 했다.

나는 인구조사 경험을 통해 인터넷참여도가 추후의 조사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에 인터넷참여를 최대한 높이기로 했다. 오피
스텔 건물만큼은 참여율 100%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인터넷시스템이 사용자 편의 측면에서 불편했는지 참여를 독려한 게 무색하게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인터넷참여를 했어도 끝까지 완성한 경우보다 중도 포기하거나 기본사항만 건드려 놓아 입력 오류인 상태가 많았다. 그럴 경우 조사원도 관리자도 두 번 세 번 일하게 돼 상황실에서도 인터넷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럴수록 한 번 해보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더구나 앞으로 국가에서 시행할 모든 조사가 인터넷참여 방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터. 그렇다면 조사원의 역할이 방문조사에만 그칠 게 아니라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겨났다. 시작이 어렵지 한 사람을 성공시키면 주변으로 경제적·시간적 편리함이 파급되리란 기대에 한껏 들떠서 내 신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일단 현장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되 차근차근 단계별로 접근하기로 했다.

먼저 조사원의 면담조사가 생략되는 장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쓸데없어 보였지만 최초의 방문에 그 부분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아울러 입력 시 불편사항을 즉시 전화상담토록 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문과 함께 전화번호를 크게 써 놓았다.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사업체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업체를 구분하여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안내문을 직접 만들었다. 부재 시엔 사무실 안으로 밀어넣고 그날 중 전화하는 걸 잊지 않았다. 방문 과정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조사로 알고 있어서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경우에 따라선 교육받은 대로 법적 근거를 보여 주었다.

 

인터넷참여 종료일 임박한 단계에선 마감시한을 상기시키고 특정항목을 임의로 넘겨 버리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사장님, 해당사항 없더라도 해당사항 없다는 표시를 꼭 해주세요. 그래야 조사가 완료됩니다. 꼭 요”라는 인사를 덧붙였다. 어느 단계든 내가 가장 주의했던 건 영업에 방해되지 않는 타이밍을 찾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뛴 만큼 SMS 알람도 바삐 울려댔다.

물론 높은 참여율 뒤에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었다. 그렇게 하여 오피스텔 건물은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7곳만 직접 방문조사
로 마쳤다. 이렇게 까다로운 곳부터 치르는 동안 나머지 네 곳의 조사구에 인터넷참여를 권유하는 것은 한결 수월하였다. 대부분 영세
한 사업체라서 인터넷참여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더러 인터넷참여가 복잡하다는 사업체는 그 자리에서 인터넷참여를 도와 드리기도
했다. 실제로 해 보니 복잡할 게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

경제총조사는 일반인이 아닌 영업장소·사업체가 대상이다. 그래서수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업체도 많았다.


인터넷 오류 입력 건으로 만나야 하는데 통화도 안 되던 사업체가있었다. 인터넷조사 종료 하루 전에 간신히 통화가 되어 입력 오류 항
목들을 받아 적고 통화를 끝내려는데 “전화 온 김에 뭐 하나 물어봅시다. 통계청에서 뭐 당첨됐다고 자꾸 문자 오는데 그런 사실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아, 경품에 당첨되셨군요. 그런 행사 있습니다.”
“하도 가짜가 많아서 이것도 무슨 사기인가 싶어서 물어보는데, 맞는 거요? 그럼 받아도 된다는 거죠? 5만 원짜리 뭐에 당첨됐다고 그
러던데.”

“사장님 5만 원이 어디에요. 당연히 받으셔야죠.”
“그럼 당장 전화해서 받겠다고 해야겠네.”
“그럼요, 축하드립니다. 제 조사구에서 사장님이 처음일 겁니다.”

내가 당첨된 것 이상으로 기쁜 일이었다.

또 한 곳은 식당이었다. 이른 오전에다 그날의 첫 방문이라 신중하게 고른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경제조사인가 뭔가 하는 거 나왔구나.”
“절 기다리고 계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계세요?”
뜻밖의 반응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편지가 왔지, 거기 써 있더구만, 조사원들이 오면 잘해 주라고.”
“그럼 잘해 주실 거죠? 사장님.”

보이지 않는 이런 지원이 조사활동을 훨씬 매끄럽게 한다. 아주머니는 조사가 끝날 때쯤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들였다.

“여기는 부자설비 사장이야. 한번 찾아봐요. 여기도 해야 되는 거아냐?”

사업체 명부를 외우다시피 했으므로 쉽게 찾아냈다. 이번엔 설비집 사장님이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런 식으로 사업체 다섯 곳
을 마치고 덤으로 폐업하거나 이사 간 사업체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직접 찾아봬야 하는데 덕분에 제가 편하게 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한테 해야지.”

식당 주인 아주머니 말씀에 모두 웃었다. 그날은 종일 날아다녔다.

그동안 조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협조해 준 사업체의 공이 무엇보다 가장 크리라. 조사활동을 집계해 보니 실제로 조사 대상 사업체
개수는 232개, 그중 인터넷참여는 90여 곳이었다. 이 인터넷참여율은 통계청 전체 약 7%, 우리 자치구 약 9%에 견줄 때 만족스러운 결과다. 비록 100% 달성은 아니지만 내 의지는 달성했다.

세상은 집 밖을 나서면 어디나 배움터다. 배움엔 나이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조금 더 부지런하면 그만큼 반응이 온다
는 것, 피할 수 없으면 부딪쳐야 하며, 또 그건 처음 한 번이 어려울뿐이란 것을 이번 경제총조사를 통해 몸소 깨달았다.

그건 삶의 어떤 과정에도 통하는 진리가 아니던가! 

 

 

신고
트랙백 TRACKBACK :0 개, 댓글 COMMENT :0 개가 달렸습니다.

티스토리 툴바